피부과에서 기미 때문에 처방을 받아 왔는데 약 봉투에 적힌 이름이 트라넥삼산이다. 검색해 보면 지혈제라고 나온다. 피 멎게 하는 약을 왜 얼굴의 기미 때문에 먹으라는 건지 여기서 한 번 멈칫하는 사람이 많다. 반대로 생리양이 많아 산부인과에서 같은 약을 받은 사람은 “그거 기미약이라던데” 하는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한다.
둘 다 맞다. 트라넥삼산은 원래 지혈제로 만들어진 약이고 기미에 쓰는 건 한참 뒤에 우연히 알게 된 쓰임이다. 어떤 약인지, 왜 두 가지에 다 쓰는지, 얼마나 먹어야 하고 어떤 사람은 먹으면 안 되는지 순서대로 적어 본다.
트라넥삼산은 어떤 약인가
성분명이 곧 약 이름이다. 트라넥삼산(tranexamic acid). 국내에서는 제일약품의 도란사민캡슐이 오래된 원조 격이고 트라넥삼산캡슐·트라넥삼산정이라는 이름의 제네릭이 여러 제약사에서 나온다. 캡슐은 250mg, 정제는 250mg과 500mg이 있다. 먹는 약은 의사 처방이 있어야 살 수 있다. 약국 진열대에 놓인 약이 아니라는 뜻이다.
몸 안에서 하는 일은 한 가지다. 플라스민이라는 효소가 만들어지는 걸 막는다. 플라스민은 피떡을 녹이는 효소다. 상처가 나면 피가 굳어 막을 만드는데, 그 막을 때가 되면 녹여서 치우는 역할이다. 트라넥삼산은 이 녹이는 과정에 제동을 건다. 굳은 피가 쉽게 풀리지 않으니 출혈이 덜하다. 지혈제로 분류되는 이유다.
허가된 효능을 읽어 보면 수술 전후 이상출혈, 코피, 월경과다 같은 출혈 쪽이 먼저 나오고 그 뒤에 편도염·인후염의 목 통증과 붓기, 구내염, 습진·두드러기의 붉은기와 가려움이 따라붙는다. 플라스민이 염증 반응에도 관여하기 때문인데, 일본에서는 이 작용을 살려 목감기약에 섞어 팔기도 한다.

기미약으로 쓰이는 이유
기미는 허가 사항에 없다. 그런데도 피부과에서 가장 흔하게 처방되는 먹는 기미약이 이 약이다. 허가 범위 밖 처방, 이른바 오프라벨인데 쓰인 역사가 길어 피부과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시작은 1979년 일본이었다. 만성 두드러기 환자에게 트라넥삼산을 오래 처방했더니 환자 얼굴의 기미가 옅어졌다는 보고가 나왔고 거기서 연구가 이어졌다. 원리는 이렇다. 자외선을 받으면 피부 각질세포가 플라스민을 만들고 플라스민은 멜라닌세포를 자극하는 신호를 늘린다. 멜라닌세포가 자극을 받으면 색소를 더 만들고 그게 뭉쳐 보이는 게 기미다. 트라넥삼산이 플라스민을 막으면 자극 신호가 줄고 색소가 덜 만들어진다. 지혈 작용과 기미 작용이 사실은 같은 스위치를 누르는 셈이다.
효과가 나타나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대개 4주쯤 지나야 “좀 옅어졌나” 싶고 8~12주가 지나면 사진으로 비교했을 때 차이가 보이는 경우가 많다. 바르는 약이나 레이저로 잘 안 잡히던 깊은 기미에도 반응하는 편이라 피부과에서는 레이저 토닝과 같이 쓰는 일이 흔하다.
한 가지는 미리 알아 두는 게 좋다. 끊으면 돌아온다. 약이 색소 공장을 잠시 세운 것이지 공장을 없앤 게 아니라서, 복용을 마치고 자외선을 그대로 받으면 몇 달 안에 다시 올라오는 사람이 많다. 먹는 동안 자외선 차단을 같이 하지 않으면 약값만 들이는 결과가 된다.
지혈제로 쓰일 때
원래 용도 쪽도 짚고 가자. 산부인과에서는 생리양이 유난히 많은 월경과다에 쓴다. 생리 시작부터 며칠간만 먹어 출혈량을 줄이는 식이라, 매일 꾸준히 먹는 기미 처방과는 복용 패턴부터 다르다. 치과에서는 발치 뒤 피가 잘 안 멎는 사람에게 가글 형태로 쓰기도 하고 이비인후과에서는 코피가 잦은 사람에게, 외과에서는 큰 수술 전후 출혈을 줄이려고 주사로 쓴다. 쓰는 과가 많다 보니 같은 약을 전혀 다른 설명과 함께 받게 된다.

처방 받는 곳과 약값
먹는 트라넥삼산은 처방전이 있어야 한다. 기미 목적이면 피부과, 월경과다면 산부인과, 코피면 이비인후과 쪽이 자연스럽다. 기미 처방은 허가 외 사용이라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약값이 전액 본인 부담인데, 약 자체가 비싼 약이 아니다. 캡슐 하나가 몇백 원 수준이라 한 달치를 받아도 약값은 보통 만 원 안팎에서 끝난다. 진료비가 그보다 더 나오는 경우가 많다. 레이저와 묶어 패키지로 받으면 계산이 달라지니 처방 전에 약값만 따로 물어보는 게 낫다.
처방전을 받으면 어느 약국에서든 조제가 된다. 워낙 흔한 약이라 재고가 없는 약국이 드문데, 늦은 시간에 들르려면 내 주변 약국 찾기에서 영업 중인 곳을 먼저 확인하고 가는 편이 낫다.
일본 약국에는 트란시노라는 이름으로 트라넥삼산이 든 일반의약품이 있어 여행길에 사 오는 사람이 꽤 있다. 국내에서는 먹는 트라넥삼산이 처방약이라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다. 직구로 들여오는 것도 의약품이라 통관에 제한이 있다. 혈전 위험이 있는 약을 진찰 없이 먹는 셈이라 권하기 어렵다.
화장품에도 트라넥삼산이 들어간 세럼·크림이 많은데, 피부에 바르는 농도와 먹는 약은 몸에 들어가는 양이 전혀 다르다. 바르는 쪽은 부담이 적은 대신 효과도 완만하다고 보면 된다. 바르는 기미약 중 가장 많이 찾는 하이드로퀴논 크림은 도미나크림 가격과 사용법 글에 따로 정리해 두었다.

복용법과 복용 기간
허가된 성인 용량은 하루 750~2,000mg을 3~4회로 나눠 먹는다. 출혈 치료 기준이라 양이 많다. 기미 목적으로는 이보다 훨씬 적게 쓴다. 250mg 캡슐을 하루 두 번, 그러니까 하루 500mg이 가장 흔한 처방이고 병원에 따라 하루 750mg까지 올리기도 한다. 식사와 무관하게 먹어도 되지만 속이 불편한 사람은 식후가 낫다.
기간은 보통 8~12주를 한 사이클로 잡는다. 두세 달 먹고 상태를 본 다음 효과가 있으면 한두 달 더 가거나,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식이다. 연구에서는 3~6개월까지 쓴 보고가 많다. 그 이상 장기 복용은 혈전 위험과 눈 쪽 부작용 때문에 의사가 중간중간 확인하면서 가는 게 원칙이다. “효과 좋으니 1년 내내 먹겠다”는 식으로 혼자 결정할 약은 아니다.
월경과다로 받은 경우는 다르다. 출혈이 있는 날 며칠만 하루 세 번 정도 먹고 끝낸다. 자기가 받은 처방이 어느 쪽인지 봉투에 적힌 용법을 다시 보는 게 먼저다.
깜빡 잊었을 때는 생각난 시점에 먹되, 다음 복용 시간이 가까우면 건너뛴다. 두 번 치를 한꺼번에 먹지 않는다.
부작용과 혈전 주의
자주 나오는 쪽은 소화기다. 메스꺼움, 설사, 속쓰림, 입맛 없음. 대개 가볍고 식후 복용으로 줄어든다. 두통이나 졸음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드물게 가려움이나 발진이 생긴다.
정말 조심할 건 혈전이다. 피떡이 잘 안 녹게 만드는 약이니 당연한 얘기인데, 혈관 안에서 생긴 피떡이 안 녹고 커지면 다리 정맥이 막히거나 폐로 가서 큰일이 된다. 실제 발생은 드물지만 아래에 해당하면 처음부터 쓰지 않거나 신중히 쓴다.
- 혈전증 병력이 있는 사람. 심근경색, 뇌경색, 심부정맥혈전증, 폐색전증 등.
- 에스트로겐이 든 경구피임약이나 호르몬제를 먹는 사람. 피임약 자체가 혈전 위험을 올리는데 겹치면 더 올라간다.
- 흡연자, 비만, 장시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 장거리 비행이나 수술 뒤 누워 지내는 기간이 여기 든다.
- 신장 기능이 떨어진 사람. 약이 신장으로 빠져나가는데 못 빠져나가면 몸에 쌓여 용량을 줄여야 한다.
-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인 사람.
먹는 중에 한쪽 다리가 붓고 아프거나, 갑자기 숨이 차거나, 가슴이 조이는 느낌이 들면 약을 끊고 바로 진료를 받아야 한다.
하나 더, 오래 먹는 사람은 눈이다. 색이 평소와 다르게 보이거나 시야가 흐려지는 시각 이상이 보고돼 있어, 몇 달 넘게 쓰는 경우 설명서에서도 정기 안과 검사를 권한다. 기미 때문에 길게 먹는 사람이라면 기억해 둘 대목이다.
다른 기미 치료와 비교
| 구분 | 트라넥삼산 (먹는 약) | 하이드로퀴논 크림 | 트라넥삼산 화장품 | 레이저 토닝 |
|---|---|---|---|---|
| 구입 | 의사 처방 | 약국 일반의약품(2%) | 화장품, 어디서나 | 피부과 시술 |
| 작용 | 색소 생성 자극 차단, 몸 전체 | 멜라닌 합성 효소 억제, 바른 부위만 | 농도 낮아 보조 역할 | 색소를 직접 깨뜨림 |
| 효과 체감 | 4~12주 | 4~8주 | 수개월, 완만 | 여러 회 시술 뒤 |
| 주된 주의 | 혈전, 장기 복용 시 눈 | 자극감, 장기 사용 제한 | 거의 없음 | 시술 뒤 색소 반동 |
| 끊은 뒤 | 재발 흔함 | 재발 흔함 | – | 재발 흔함 |
어느 하나가 정답이라기보다 깊이와 상태에 따라 섞어 쓰는 게 보통이다. 표면의 옅은 기미는 바르는 쪽으로 시작하고 진피까지 내려간 기미나 레이저로 안 잡히는 기미에 먹는 약이 붙는 식이다.
자주 묻는 질문
트라넥삼산 약국에서 그냥 살 수 있나
먹는 약은 처방전이 있어야 한다.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건 트라넥삼산이 든 화장품뿐이고 그건 약이 아니다. 약국에 가서 “기미약 주세요” 하면 하이드로퀴논 크림이나 비타민 쪽을 권받게 된다.
얼마나 먹어야 기미가 옅어지나
빠르면 4주, 보통 8~12주는 봐야 차이가 난다. 한 달 먹고 안 보인다고 바로 접기엔 이르다. 반대로 석 달 먹어도 변화가 전혀 없으면 기미가 아닌 다른 색소일 가능성도 있으니 진단을 다시 받아 보는 게 낫다.
피임약 먹으면서 같이 먹어도 되나
둘 다 혈전 위험을 올리는 약이라 겹치는 걸 꺼린다. 미국 허가 사항에서는 아예 병용 금기로 적혀 있다. 피임약을 먹고 있다면 처방 전에 반드시 말해야 한다. 의사가 알고도 처방한 경우에만 먹는다.
먹으면 생리양이 줄어드나
줄 수 있다. 애초에 월경과다 치료제로도 쓰이는 약이라 기미 목적으로 먹는 중에도 생리양이 평소보다 적어졌다는 사람이 있다. 몸에 해가 되는 변화는 아니지만 평소와 너무 다르면 산부인과에 알린다.
비타민C, 글루타치온이랑 같이 먹어도 되나
같이 먹는 경우가 많고 문제가 보고된 조합은 아니다. 피부과에서도 비타민C와 묶어 처방하는 일이 흔하다. 다만 영양제 말고 다른 처방약, 특히 혈액 응고에 관련된 약을 먹고 있으면 그건 꼭 알려야 한다.
복용 전 주의사항
- 혈전 병력, 피임약·호르몬제 복용, 신장 질환, 임신·수유 여부는 처방 전에 먼저 말한다.
- 처방받은 용법대로만 먹는다. 기미 처방과 출혈 처방은 용량과 기간이 다르다.
- 복용 중에는 자외선 차단제를 매일 바른다. 안 바르면 약 효과가 자외선에 그대로 상쇄된다.
- 다리 붓기·통증, 갑작스러운 호흡곤란, 가슴 통증, 시야 이상이 생기면 복용을 멈추고 진료를 받는다.
- 해외 직구 제품을 진찰 없이 먹지 않는다. 같은 성분이라도 혈전 위험 평가 없이 먹는 건 다른 문제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안내이며, 복용 전 약사 또는 의사와 상담하세요. 제품의 성분·용법·가격은 변경될 수 있으므로 실제 복용 시에는 제품 첨부 설명서와 처방 내용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